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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는 아니지만 라거맥주는 다 내덕이다. 칼스버그(Carls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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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글에서는 하이네켄과 더불어 맥주시장의 세계 3위와 4위를 다투고 있는 칼스버그(Carlsberg) 대한 글입니다.

나름 라이벌 관계이자 비슷한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어서 필자도 가끔 구매나 음용 시 둘을 착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칼스버그는 하이네켄과 마찬가지로 녹색 유리병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둘의 차이점은 하이네켄의 심벌은 빨간색 별이고, 칼스버그의 심벌은 왕관이라는 것입니다.

(워낙 다양한 마케팅을 하고 있어서 위 사진처럼 왕관이 없는 캔도 볼 수 있습니다.)

왕관은 칼스버그가 덴마크 왕실의 공식 맥주라는 뜻입니다.

 

1840년대 덴마크의 왕 프레드릭 7세 명에 의해서 덴마크의 양조가들이 덴마크를 대표할 수 있는 맥주를 만들고 있었는데, 이때 채택된 것이 바로 칼스버그라고 합니다.(어떤 글에서는 창업자가 왕실에 헌정했다고 합니다)

창업자인 야콥 크리스티안 야콥센은 실제 양조가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덴마크에는 라거 맥주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세계 최초의 페일라거인 필스너 우르켈이 1842년에 생산되었으니, 덴마크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드물었습니다.

야콥 크리스티안 야콥센이 1845~1846년 독일 바이에른 지역을 여행하면서 라거 맥주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라거 맥주의 맛에 반한 야콥 크리스티안 야콥센이 바이에른에서 라거 효모를 가지고 와서 덴마크 최초의 라거 맥주 생산에 성공하게 됩니다.

하지만 기존의 양조장에서는 라거 맥주를 냉장 보관할 수 없어서, 1847년 아들인 카를(Carl)의 이름을 따서 칼스버그란 이름의 양조장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아들의 이름을 따서 회사 이름을 정했으니 정말 사이좋은 부자일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고 합니다.

특히 둘의 불화는 아들 카를이 운영하는 공장에서 기존의 에일맥주의 생산을 원했던 창업자 야콥 크리스티안과, 이를 따르지 않고 라거 맥주를 계속 생산했던 카를의 고집이 부딪히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제목에서 언급했듯이 칼스버그는 오늘날 많은 라거 맥주가 생산될 수 있게 해 준 고마운 술입니다.

칼스버그는 파스퇴르의 맥주효모 이론을 수용하여 이를 연구하는 생물학 연구소를 설립하였습니다.

이 곳에서 1883년 에밀 크리스티안 한센은 라거 맥주를 제조하는데 필요한 효모를 순수 배양하는 데 성공하였습니다.

이를 특허로 등록했다면 소위 떼돈을 벌 수 있었을 텐데, 이를 무상으로 배포하였습니다.

(실제 모든 라거 맥주는 칼스버그 효모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효모의 학술명은 파스퇴르 효모지만, 칼스버그 효모로 더 유명합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당초 에밀 크리스티안 한센은 이 효모를 배양에 성공하고 칼스버그 효모라고 학계에 보고를 하였는데, 본인 학계에 먼저 보고 했던 파스퇴르 효모와 동일한 효모인 것으로 밝혀져 학술명은 파스퇴르 효모라고 쓰게 된 것입니다.

 

칼스버그는 또한 리버풀 FC의 후원사로도 유명합니다.

1992년~2010년까지 리버풀 FC의 선수 유니폼에 칼스버그의 로고가 찍혀있었습니다.

양조가가 창업한 리버풀 FC의 후원사가 맥주회사인 것도 나름 재미있는 사실입니다.

2004년 리버풀 FC가 하이네켄이 후원하는 유럽 챔피언스 리그에서 우승을 했는데, 당시 우승 기념사진에도 칼스버그의 로고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라이벌인 하이네켄이 후원하는 대회에서 우승하여 자신의 로고를 뽐냈으니, 나름 통과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역사가 오래된 만큼 칼스버그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있는데, 기회가 되면 또 다른 글에서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두서없는 칼스버그에 대한 짧은 이야기들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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